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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昔物語』巻二十四第四十四の再話とその韓国語訳です。



今は昔、安倍仲麿という人がいたそうだ。朝廷は彼を遣唐使として唐に送った。何年も経ったが、仲麿はなかなか帰国できなかった。それで、また別の遣唐使がやってきたときに、その人といっしょに帰国することにした。明州というところまでやってくると、唐の人々が海辺で仲麿を送る宴会をしてくれた。夜空には月が明るく輝いていた。それを見ると故郷のことが思い出されて懐かしく悲しくなり、仲麿は故郷の方を見ながら次のように和歌を詠んだ。

天の原ふりさけ見れば春日なる三笠の山にいでし月かも

こう詠んで泣いたという。これは、仲麿がこの国に帰ってから語ったのを聞いて、語り伝えたという。(注:実際は、仲麻呂は帰国できないまま唐で世を去った)


아베노나카마로(安倍仲麿)가 당나라에서 와카를 지은 이야기

옛날 옛날에, 아베노나카마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단다. 조정은 그를 견당사(注1)로서 당나라에 보냈단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나카마로에게는 귀국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또 다른 견당사가 일본에서 왔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귀국할 때에 함께가기로 했지. 명주(明州)라는 곳까지 오자 당나라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나카마로 들을 환송하는 연회를 베풀어 주었지. 밤 하늘에는 달이 휘영청 빛나고 있었어. 그 달을 보고 고향이 생각난 나카마로는 그립고 슬픈 마음을 참지 못하여 고향쪽을 쳐다보면서 와카를 지었단다.

너른 하늘을 올려다보니 저 카스가의 미카사산에도 뜨는 달이더라

이렇게 지은 뒤 울었단다.
이것은 귀국한 나카마로(注2)가 이야기한 것을 들은 사람들이 전했다고 한다.

(注1) 8c.에서9c.에 걸쳐 일본에서 당나라에 파견하던 사신
(注2) 사실은 나카마로는 귀국하지 못한 채 당나라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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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7-05-02 13:49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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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昔物語』巻二十四第四十三の再話と韓国語訳です。




今は昔、紀貫之という歌詠みがいたそうだ。土佐の守となって土佐に下り、そこで暮らしていたが、任期が果てる年に、七つか八つになる男の子(注)を亡くした。見目かたちの美しいその子どもをかわいがっていた守は嘆き悲しみ、病みつくほどに思いこがれたという。やがて任期が果てたので都に戻ることになったが、この地であれやこれや遊んだ子どものことが思い出されて、なんとも悲しくなり、柱に次のように書き付けた。

都へと思ふ心のわびしきは帰らぬ人のあればなりけり

都に上った後もその悲しみは消えなかったそうだ。柱に書き付けた歌は今も残っていると語り伝えられているとか。

(注)『土佐日記』によると女の子。


토사지방의 장관 키노츠라유키(紀貫之), 아기를 잃고 와카를 지은 이야기

옛날 옛날에, 키노츠라유키라고하는 와카작가가 있었단다. 토사지방의 장관이 되서 그 지방으로 내려가서 살고 있었는데, 임기의 맨 마지막 해에 일곱-여덟 쯤된 남자아기를 잃었어. 잘생긴 그 아기를 귀여워하고 있던 장관은 비탄에 잠겨 병들 정도로 아기를 애타게 그리워했단다. 이윽고 임기가 끝났기 때문에 수도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그 동안 거기서 이리저리 놀던 아기 생각이 나서 매우 슬픈 마음이 들었기에 저택 기둥에 이렇게 적어두었단다.

돌아갈 수 있게 됐는데도 하도 외로워; 돌아가지 못하는 아기가 있어서

수도로 돌아간 뒤에도 여전히 슬픈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단다. 그가 기둥에 적어둔 와카는 지금도 남아 있다고 전해지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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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7-04-06 20:24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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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昔物語』巻二十四第四十二の再話と韓国語訳です。




朱雀院の女御が亡くなったあと、女房が和歌を詠んだ話
今は昔、朱雀院の女御は太政大臣小野の宮の娘だったが、あっけなく亡くなってしまったという。ところで、その女御には助という名の女房がいた。容貌も心映えも優れていたので、女御は助をかわいがり、助も女御を慕って仲むつまじくしていたが、助は常陸の守の妻になり、その国に下ったそうだ。
常陸に下っても女御を慕う気持ちは変わらなかった。美しい貝を拾い集めて箱に入れ、女御にお見せしようと都に上ってみると、女御が亡くなったというではないか。限りなく嘆き悲しんだが、どうしようもないので、貝の入った箱を「これで誦経をしてください」と、小野の宮に奉ったそうだ。箱の中には次のような和歌が入っていたという。

拾いおきし君もなぎさのうつせ貝いまはいづれの浦によらまし
(女御さまにさし上げようと拾っておいた渚の貝ですが、女御さまが亡くなった今、私はこの貝と同じ身のない貝殻です。これからはだれを頼りに生きていけばいいのでしょう)
この和歌を見て小野の宮は涙にむせかえり、泣く泣く次のように詠んで送った。

たまくしげうらみうつせるうつせ貝きみが形見と拾うばかりぞ
(美しい箱に入った悔恨を込めた貝殻を、私もまた泣き娘の形見として拾うばかりです)
当時はこの話を聞いて泣かない人はいなかったと語り伝えられているとか。


수자쿠원의 비가 돌아가신 후 시녀가 와카를 지은 아야기
옛날 옛날에, 수자쿠원의 비는 중앙 최고관청 장관인 오노노미야의 딸이었는데 허망하게 돌아가 버렸단다. 그런데 그 비를 시중들던 수케라고 하는 여자가 있었어. 생김새도 마음씨도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비는 그녀를 소중히하고 그녀도 비를 사모하면서 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었지만, 그녀는 히타치-지방의 장관의 아내가 돼서 그 지방으로 내려갔단다.
지방에 내려간 뒤에도 비를 사모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 거든. 아름다운 조개들을 주워 모으고 상자에 넣어 가지고 비에게 보여드리려고 수도에 올아왔더니 비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 끝없이 한탄하며 슬퍼했지만 할수없이 조개를 넣은 상자를 “이것을 독경의 값으로 받으십시오” 라며 오노노미야에 헌상했단다. 그 상자속에는 이런 와카가 들어 있었단다.

이제야 나도 주워 놓은 조개도 헛된 빈 조가비; 당신 없이 어느 바닷가서 살아야지
이 와카를 보고 오노노미야는 눈물에 숨이막힐 정도로 울면서 이렇게 지어 보냈단다.

원한이 담긴 옥합속의 빈 조가비; 내가 주워야하는 아쉬운 딸의 추억거리
그 시절에는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모두가 울었다고 전해지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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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7-03-13 16:54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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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今昔物語』第二十四第四十の再話と韓国語訳です。





昔々、圓融院の法皇がお亡くなりになり、紫野に葬送したが、ある年の子の日(ねのひ)にここで若菜摘みをなさったことを思い出して、人々は嘆き悲しんだ。そのとき、左大将朝光卿が次のように歌を詠んだ。

紫のくもにかけても思ひきや春のかすみになしてみむとは

また、行成卿も次のように詠んだ。

おくれじとつねの御幸にいそぎしに煙にそはぬたびの悲しさ
このように歌を詠んだのも哀れなことだと語り伝えられているという。


圓融院을 장송해드린 밤에 朝光卿, 行成卿이 와카를 지은 이아기
옛날 옛날에, 圓融院법황이 돌아가셔서 보랏빛들판으로 장송해드렸을 때, 어느 해 자일에 여기서 봄나물을 끋으며 노신 것을 생각해내어 사람들은 슬퍼하며 한탄했다. 그때 左大将朝光卿이 이렇게 지었다.

누가 예상을 했겠느냐 같은 보랏빛들에서 봄 그으름으로 하늘나라로 보내드려야하다니

또 行成卿도 이렇게 지었다.

행차에 뒤지지 않으려고 항상 서두르고 있던 내 몸이요 연기로 떠나시는 당신을 모시지 못해서 슬퍼하네

그렇게 지은 것이야 말로 애처롭다고 전해지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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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7-03-01 17:39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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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昔物語』巻二十四第四十一の再話です。韓国語訳はこちら


今は昔、一条院が亡くなったあと、まだ幼かった後一条院が、目にとまった撫子の花を何気なく摘んだのを見て、母親の上東門院が次のように詠んだという。

見るままに露ぞこぼるるおくれにし心もしらむなでしこの花
(露をこぼす撫子を見ると涙が落ちる。父親を亡くしたこともまだわからない愛しい子よ)

その歌を聞いた人々は皆泣いたそうだ。

また、一条院がまだ天皇でいらっしゃったとき、皇后が亡くなったが、後に御帳の紐に結びつけられた文が見つかった。天皇にお見せしてほしいという感じだったで、おつきの者がお見せすると、文には歌が三首書き付けてあった。

よもすがら契りしことを忘れずは恋ひむ涙の色ぞゆかしき
(夜どおし契ったことを忘れずに私を思って流している涙が慕わしい)
知る人もなき別れ路に今はとて心細くもいそぎたつかな
(知る人もいないあの世への路に今はもう行かねばならなず 不安ながらも急いで旅立つことよ)

天皇はその歌を見て限りなく悲しまれた。話を聞いた世の人々も、泣かない人はいなかったと語り伝えられていると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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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7-01-20 11:34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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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昔物語』巻第二十四第四十一の再話です。日本語はこちら



一条院이 돌아가신 후上東門院이 와카를 지은 아야기

옛날 옛날에 一条院이 돌아가신 후 아직 어린 後一条院이 눈에 띈 패랑이꽃을 무심히 땄는데 그 것을 본 어머님 上東門院이 이렇게 지으셨다.

패랑이꽃이 이슬을 흘려서 눈물이 떨어지네 아버님을 잃은 것도 이해하지 않는 귀여운 아이요

그 와카를 듣고 모두가 울었단다.
또 一条院이 아직 천황의 자리에 계시던 시절에 천황비가 돌아가셨는데, 나중에 장막 끈에 묶인 편지가 발견됐다. 천황께 보여드리고 싶은 눈치였기 때문에 종자가 보여드려더니, 편지속에는 와카가 3개 씌여져 있었단다.

밤새도록 약속한 것을 잊지 않으니 나를 그리워하는 당신의 눈물빛이야말로 그리워하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저 세상으로 이제는 가야하니 불안한 마음으로 서둘러 출발하네


천황은 그 와카를 보고 한없이 슬퍼하셨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세상 사람들중에는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해지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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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7-01-19 15:58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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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昔物語』巻第二十四第三十九の再話です。韓国語訳はこちら


今は昔、少将藤原義孝という人がいた。姿形はもちろん、心ばえ、才能も秀でた人だった。道心も深かったが、若くして世を去ったので、親しい人々は嘆き悲しんだが、しかたのないことだった。
ところが、死んでから十日ほどして、賀縁という僧侶の夢に少将が現れ、心地よげに笛を吹いているように見えたが、ただ口笛を吹いているだけだったのだ。賀縁が「母上がとても恋しがっていらっしゃるのに、どうしてそのように心地よげにしておられるのか」と尋ねると、少将は返事をしないで和歌を詠んだ。

時雨にはちぐさの花ぞちりまがふなにふるさとの袖濡すらむ
(そちらで時雨が降るころ、こちらでは様々な花が時雨と見まがうほどに散り乱れている。どうしてわたしの古里であるそちらではわたしの死を悲しんで泣いているのだろうか)

賀縁は驚いて夢から覚め、泣いた。また、翌年の秋、少将は妹の夢に現れて、次のように和歌を詠んだ。

きてなれし衣の袖もかわかぬに別れし秋になりにけるかな
(あなたが着慣れた喪服の袖が乾いていないのに、お別れした秋になりましたね)

妹は驚き目覚めて、涙にくれた。
また、少将がまだ病の床にあったとき、妹で冷泉天皇の女御である人が、少将が亡くなったことをまだ知らずに「経書をふたりで最後まで読経しましょう」と文をやった。少将が亡くなったため、そのまま忘れて亡骸を葬ったところ、その夜、母の夢に少将が現れて言った。

しかばかり契りしものをわたり川かへるほどには忘るべしやは
(あれほど約束したのに、わたしが三途の川から戻ってくる間にお忘れになるとは――だからわたしはそちらに戻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母は驚き目覚めて、ひどく泣いた。
和歌を詠む人は死んだあとに詠んだ歌もこのように優れている、と語り伝えら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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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12-08 10:08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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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昔物語』巻第二十四第三十九の再話です。日本語はこちら


소장 후지와라 요시타카가 죽은 뒤에 와카를 지은 이야기

옛날 옛날에, 소장 후지와라 요시타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단다. 그는 모습은 물론 마음씨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었어. 도심도 굳은 사람이었는데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친한 사람들은 한탄하고 슬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열흘 남짓 지난 날에 가엔이라고 하는 승려의 꿈속에 그가 나타났다. 기분 좋게 피리를 불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실은 단지 휘파람을 불고 있었거든. 가엔이 “어머님이 당신을 매우 그리워하시는데, 왜 그렇게 기분 좋게 지내고 계시는 거예요” 라고 물었더니, 소장은 대답대신 와카를 지었어.

거기서 초겨울의 비가 오다 말다 할 때 여기서는 여러 꽃이 쏟아지고 있네 고향 사람들은 어째서 눈물로 소매를 적시고 있느냐

가엔은 깜짝 놀라서 깨어나서 울었단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 소장은 여동생의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와카를 지었어.

늘 입고 살던 옷의 소매도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우리가 헤어진 가을이 다시 또 왔네

여동생은 놀라서 깨어난 뒤 매우 울어댔어.
그런데 소장이 아직 앓고 있었던 시절 여동생인 령샘천황-비가 소장이 돌아가신 것을 미처 알지 못하여 “경서를 함께 끝까지 읊자”라는 소식을 보냈단다. 소장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만 잊어버린 채 소장의 유체를 매장했더니, 그 밤에 어머님의 꿈에 소장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그렇게 약속했는데 내가 三途川을 건너가지 않고 돌아오는 사이에 다 잊어버리다니

어머니는 놀라서 깨어난 뒤 몹시 울어댔단다.
와카를 지는 사람은 사후에 지은 와카도 이만큼 훌륭하다고 전해지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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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12-06 10:54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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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昔物語』巻第二十四第三十七話の再話です。韓国語訳はこちら


昔々、藤原実方という人がいたそうだ。一条院の御時に禁中に仕えていたが、思いがけず陸奥の守に任命されてね。禁中で親しい間柄だった宣方朝臣と別れるのが悲しくて、涙ながらに陸奥へと下って行った。間もなく実方から、次のような和歌を記した手紙が来たという。

やすらはでおもひ立ちにしあづまぢにありけるものをはばかりの関
(ためらい〈=はばかり〉もなく立ってきた東国への旅なのに、ここにはばかりの関があったことよ。わたしにはやはりためらいがあるようだ)

また、道信中将という人がいた。その人も実方中将と親しくしていたが、(陰暦)九月のころに紅葉を見に行く約束をしたあと、思いがけず亡くなってしまった。限りなく哀れに思って、実方中将は泣く泣く次のように和歌を詠んだという。

見むといひし人ははかなく消えにしをひとり露けき秋の花かな
(いっしょに紅葉を見ようと約束した人ははかなく亡くなってしまい、わたしは一人で泣きながら、露に濡れた秋の花を見ているよ)

さらにまたこの中将の話だが、かわいがっていた幼い子どもが亡くなったとき、どうにも悲しくて泣きながら寝ていたら、その子どもの夢を見たので驚いて夢から覚め、

うたた寝のこのよの夢のはかなきにさめぬやがての命ともがな
(うたた寝の夢に今は亡きわが子が現れたが、はかなく夢から覚めてしまった。夢から覚めずにわたしの命が終わってしまったらよかったのに)

と和歌を詠んで涙にくれた。この中将はこのように和歌を詠むことに秀でていたわけだ。けれども、陸奥の守になって陸奥に下ってから3年という年に、はかなく世を去ってしまい、実に哀れなことであった。この人の子の朝元も和歌を上手に詠んだと伝えら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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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11-20 18:48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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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昔物語』巻第二十四第三十七話の韓国語による再話です。日本語はこちら


후지와라 사네카타-중장이 무츠지방에서 와카를 지은 이야기

  옛날 옛날에 후지와라 사네카타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단다. 이치조원-시애에 궁중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무츠지방의 장관에 임명됐어. 그는 친한 사이이던 노부카타-아섬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리면서 무츠로 내려갔어. 이윽고 중장 한테서 이런 와카를 쓴 편지가 왔단다.

주저하지 않고 나섰던 동국부임의 길이었는데 넘어가기 힘들었던 하바카리-관문
(역시 주저하는 마음이 있나 봐요)

  또 미치노부-중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단다. 그 사람도 사네카타-중장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는데 음력 구월경에 단풍을 구경하러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한 뒤, 뜻밖에 사망했어. 너무 안타까워서 사네카타-중장은 울면서 이렇게 와카를 지었단다.

함께 보자고 말한 사람이 사라졌으니 눈물 흘리면서 나 홀로 이슬이 맺힌 가을꽃을 보고 있네

  다시금 이 사네카타-중장의 이야기인데, 귀여워하던 어린 아이를 잃었을 때, 어찌할 수 없는 슬픔에 젖어서 누워 있던 그의 꿈속에 그 아이가 나타났기 때문에 깜짝 놀라서 깨어난 뒤,

선잠의 꿈은 너무나 짧게 끝났소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이 삶이 끊겼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와카를 짓고 눈물을 흘렸어.
이 중장은 이만큼 와카를 짓는 데에 뛰어난 사람이였거든. 그런데 무츠의 장관이 돼어 무츠로 내려간 지 3년이 되는 해에 덧없이 세상을 떠났으니, 애처롭기 짝이 없었어. 이 사람의 아들 아사모토도 와카를 잘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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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11-18 22:05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読書と韓国語学習の備忘録です。


by nishinay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