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昭和のまち 残った映画看板」
2020年 04月 06日
2018.1.15の韓訳課題 原文=朝日新聞(2017.12.16)、韓訳nishinay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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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1)의 마을---살아남은 영화 간판]
오우메시의 상점가---한때 철거를 검토했으나 ‘안 되’ 라는 소리가 일어나서
‘쇼와의 마을’을 내세우는 JR(Japan Railway)오우메역 주변의 상점가. 지난 가을 이 상가의 상징인 영화 간판들이 하마터면 사라질 뻔했다. 일부 옥외 간판이 빛 바래 23년 전에 ‘쇼와의 마을’을 기획한 책임자가 이제 그만둘 때라며 간판 철거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위에서 ‘안 되’ 라는 소리가 일어나서 철거는 철회되었다. 이 고장에서 간판을 그려온 ‘최후의 영화 간판 화가’의 창작 의욕도 아직 건재하다.
옛 오우메가도의 상점가에는 오래된 가게들이 남아 있고 레트로한 분위기를 테마로 새마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카츠카 후지오(赤塚不二夫, 만화작가)를 기념한 [오우메 아카츠카 후지오 회관]도 있다. 포스터를 보고 그린 덕특한 영화 간판은 1994년부터 가게의 처마등에 내걸렸고 역 구내 지하도의 벽에도 나란히 걸려 있다.
영화 간판 활용을 앞장서서 처음 기획한 사람은 [오우메 아카츠카 후지오 회관] 회장인 요코카와 히데토시씨(82세). 상가가 기획한 행사에서 책임자를 맡았을 때, 타케히사 유메지(竹久夢二, 미인화로 유명한 화가)의 전시회를 알리는 손으로 그린 간판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20년전까지 지역의 영화관을 위해서 간판을 그렸던 구보 노보루씨(76세)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요코카와씨는 다시 그려달라고 구보씨에게 부탁했다.
그로부터23년. 자신이 나이 든 것을 고려한 요코카와씨는 이 봄에 구보씨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간판은 그만두겠다’고. 그런데 일주일만에 생각을 돌렸다. 간판이 빛 바래져 버린 데다가 관리도 쉽지 않아서 철거하려고 했는데 상점가 회원들 사이에서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어떻게 좀 해보자’ 라며 방법을 모색하는 소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편 요코카와씨는 철거를 고려하면서 영화 간판 기록을 책자로 남겨 두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책자의 제목은 ‘잘 가거라, 판관이여’. ‘판관’은 구보씨의 별명인데, ‘간판’의 글자를 거꾸로 한 뒤 ‘간’ 대신에 요코야마 타이관(橫山大觀, 일본화의 거장)에서 ‘관’ 이라는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구보씨는 몸이 안좋아졌지만 이제 다시 그림 붓을 들었다. 영화가 전성기였던 쇼와30년대 (1955~1964), 주인공들을 그린 간판을 동경한 구보씨는 집 근처의 영화관에 다녔다. 그때는 중학생이던 시절, 그는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독학했고,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영화관을 찾아가 청했다. “재료비만 받을 수 있으면 괜찮으니까 간판 화가로 고용해주세요”라고 하면서.
당시 이 지역에는 영화관이 3개 있었다. 매주마다 새로운 영화가 상영되었으니 3개의 영화관 모두가 문을 닫을 때까지 16년 동안에 구보씨는 3000~4000점의 간판을 그렸다. 그림물감으로는 디스템퍼(※2)를 사용했다. 너무 바빠서 영화를 볼 시간은 없었다.
요코카와씨와의 만남을 계기로 영화 간판 제작을 재개. 2005년에는 긴자의 영화관에도 그가 그린 간판이 걸렸다. 실은 구보씨는 그 영화 ‘사내는 괴롭군’ 을 6개월 전에 처음으로 보았다. 그는 ‘이렇게 재미있다니’ 라며 감동을 했다고 한다.
영화 간판이 명맥을 유지하며 상점가도 유지하기 위해 모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보씨는 기뻐한다. “영화 간판은 밖에 있어야 제 맛이 있구먼.”
요코카와씨가 구상한 책자는 나중에 [판관과 영화 간판, 상점가가 다 들어 있는 사진집] 으로 11월 말에 완성되었다. 그 내용은 ‘상점가진흥조합 3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자의 제목은 [판관선생---쇼와의 마을 오우메와 영화 간판사]로, 작별의 말은 없어졌다. 책자의 가격은 1600엔(+소비세)으로 문의는 게야키 출판사(전화 042-525-9909)이다. (글=야마우라 마사타카)
(※1)쇼와---일본의 연호. 1926~1989.
(※2)디스템퍼---아교(膠)와 카세인을 개서 만든 도료.
「昭和のまち」を売りにするJR青梅駅周辺の商店街から今秋、象徴の映画看板が消えるかもしれなかった。屋外の看板の一部は色あせ、23年前に始めたときの責任者がそろそろ潮時と撤去を考えたからだ。だが、周囲の「待って」との声を受けて撤回した。描く地元の「最後の映画看板師」の創作意欲も健在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