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年10月の翻訳練習課題「初めての韓国」


「初めての韓国旅行」(原文:YR 韓国語訳:nishinayuu)

첫번째의 한국여행 (原文は韓国語の下にあるmoreをクリックしてご覧下さい)

1987, 서울 올림픽이 열리기 1년전의 여름, 나는 남편과 함께 시모노세키에서 운항하는 관부페리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일본-한국간 철도연락 승차권인 [일한공동티켓] 발매되기 1년전이었다. 오후 7시경에 출항하여 새벽에는 이미 부산항에 도착했는데, 세관과 입국관리소의 업무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페리가 접안할 수가 없어 우리는 둥둥 흔들리는 안에서 대기해야 했다.

페리 안은 활기가 넘쳤다. 아줌마들이 여기저기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일본에서 구입한 모양인 약같은 것들을 나누고 있었는데, 마치 자기가 거둔 성과를 서로 자랑하고 있는 듯한 활기찬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페리를 내릴 그녀들의 등이나 손은 짐으로 가득 있었다. 그녀들 중에는 술병을 젊은이한테 맡기고 내려가는 이도 있었다. 술은 사람당 세병까지라는 규칙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부산 거리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올림픽을 계기로 도시가 크게 변화되어 가는 시절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비탈길 도중에 있는 오래된 여관에서 묵었는데, 식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시절에도 호텔은 있었지만, 우리 남편에게 그런 선택지는 없다. 나는 방이 작고 어두운 것은 참을 있었다. 그런데 더위가 너무 심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방에 창문도 없었고, 선풍기는 있는지 고장났는지 수도 없었다. 종업원한테 선풍기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는데, 선풍기를 한국말로 하지 못해서 물음은 통하지 않았다. 선풍기는 한자어여서 [센푸키]라고 하면 통하겠지 라고 쉽게 생각한 탓이었다.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시장에도 가봤는데, 주문하기가 쉽지 않아서 결국 식당에서 [우동] 먹은 다였다. 동네 식당에서 먹은 김밥, 불고기, 삼계탕, 그리고 길가에 서서 먹은 호떡 등은 맛있었다. 호떡은 지금도 한국에 가면 그리워서 먹고 싶어지는 음식인데, 지금은 인천공항에서도 손쉽게 먹을 있게 되어 좋다. 고속버스로 이동하는 도중 드라이브인에서 자주 먹던 호도과자도 마찬가지다. 당시는 지금처럼 멋진 카페는 찾을 없었다. 다방이라는 찻집인 듯한 가게가 있기는 했지만, 가게 안에는 예쁜 아가씨가 있어서 우리 같은 사람이 차를 마시러 들어갈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진절한 사람이 많아 우리에게 일본말로 말을 걸기도 했고, 우리가 길을 물어보면 함께 가주기도 했다.

부산을 구경한 고속버스로 경주, 서울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닌 것은 확실한데, 때의 기억은 후에 여러 다닌 여행의 기억과 섞여서 아주 단편적이다. 여하튼 내가 그떄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 () 라는 속담과 마찬가지로 [남편을 따라가다가 한국여행을 하게 됐다]라고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기억을 늘어놓으면 다음과 같다.

*부산 용두산공원의 이순신장군() 일본 쪽을 바라보면서 서있어서 다시금 일한의 역사를 확인하게 됐다.

*경주역 가까이에 있는 원분(圓墳) 많은 젊은이들이 돌러싸고 술을 마시거나 노래하면서 즐기고 있었다. 유적과 하나가 평화롭고 느긋한 광경에 감탄했다.c0077412_11455637.jpg

*시골 길가에 미루나무 가로수가 멀리까지 늘어서 있어 전원풍경이 아주 예뻤다.

*서울은 확실히 도로가 넓다! 아침부터 밤까지 활기로 있다! 특히 시장은 그렇다.

*조선총독부 청사가 광화문과 경복궁 사이를 가로막는 듯이 있었다.

*탑골공원에는 바둑 두는 할아버지들이 많아서, 들어갈 긴장했다.

그로부터30여년이 지나갔고 한국도 모습이 바뀌었다. 경주도 예쁘게 정비되고, 인사동도 세련된 거리가 됐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첫번째의 한국여행이 조금이나마 생생하게 남아 있고, 때를 지금도 그리워한다.

()일본의 석담(牛かれて善光寺参[소를 쫓아 따라갔더니 젠코지에 당도하여 예불하게 됐다] 이렇게 번역해봤다. 젠코지는 유명한 사원.






1987年、ソウルオリンピックの前年の夏、下関から関釜フェリーで夫と釜山に向かった。日本と韓国の鉄道連絡乗車券「日韓共同切符」発売の一年前でもあった。夕方7時頃出港し未明には釜山港に到着するのだが、税関や入国管理業務の開始まで接岸せず待機しているので、寝転がったままぷかぷか揺られていた。

船内は活気に満ちていた。アジュマたちがいくつかの車座になって日本で仕入れてきたらしい薬のようなものなどを分けていて、賑やかに戦禍を自慢しあっている様に見えたのが印象的だった。彼女達は下船する時、荷物で背中も手も一杯にしていた。中にはお酒のビンを若者たちに持ってもらってる人もいた。一人3本までという決まりがあったのかもしれない。

釜山の町は工事ラッシュだった。オリンピックをきっかけに大きく変わって行こうとしていたのだろう。泊まった宿は坂の途中にある昔ながらの素泊まりの旅館だった。勿論既にホテルはあっただろうが、うちの夫にそんな選択肢はない。狭くて暗いのは我慢できたが、暑いのに窓もなく、扇風機はあったのか、故障していたのか。宿の人に扇風機のことを話そうとしたが、扇風機を韓国語で言えなくて通じなかった。漢語なので、センプウキと言えば通じるのではないかと甘く考えていたのだった。

食べ物はおいしかった。市場にも行ったが注文するのが難しくて、結局市場のなかにある食堂で「ウドン」を食べただけだった。街の食堂で食べたキンパプ、焼き肉、サンゲタン、街中で立ち食いしたホットクなどはすべておいしかった。ホットクは今でも韓国に行くとなつかしくて食べたくなるが、高速バスでの移動中ドライブインでよく食べていたホドカジャと共に今、仁川空港で手軽に食べられるのが嬉しい。今みたいなおしゃれなカフェは見かけなかった。タバンという喫茶店のようなお店はあったが、中にきれいな女性がいて、私たちがお茶を飲みに入って行くような雰囲気ではなかった。親切な人が多く、日本語で話しかけてくれたり、道を聞くと一緒に連れて行ってくれたり。

その後、高速バスで慶州、ソウルといろいろな観光地を回ったはずだが、なにしろ「牛に引かれて善光寺参り」レベルだったので、その後の旅行の記憶とごちゃ混ぜになって断片的にしか覚えていない。その断片的な記憶の中から。

*釜山の龍頭山公園の李将軍(像)は日本の方を見て立っているんだと改めて日韓の歴史を確認したこと。

*慶州の駅近くの円墳を大勢の若者が囲んで、お酒を飲んだり歌ったり楽しんでいたこと。遺跡と一体になってのどかでおおらかだなと感心した。

*田舎道にポプラの並木が遠くまで続いていて田園風景が美しかったこと。

*ソウルはとにかく道路が広い!朝から夜まで活気にあふれている!特に市場。

*朝鮮総督府庁舎が光化門と景福宮の宮殿とを隔てるように建っていたこと。

*タプコル公園には碁を打っているハラボジが沢山いて、入る時かなり緊張したこと。

あれから30年近く経ち韓国も様変わりした。慶州も美しく整備され、仁寺洞も垢抜けた通りになった。でも、私の中にはあの頃の韓国も少しだが生きていて今も懐か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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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18-02-20 12:02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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