タグ:翻訳 ( 165 ) タグの人気記事

韓国の詩 「懐かしい金剛山」 韓相億

c0077412_21292443.jpg8月10日の記事で触れた「懐かしい金剛山」を7・5調の詩に訳してみました。「懐かしい金剛山」は1962年に6・25の12周年に当たって文化広報部の要請で作られた歌曲です。作曲は崔永燮で、曺秀美(スミ・ジョーとして知られる世界的歌手)やプラシド・ドミンゴらによって歌われています。ドミンゴの歌はこちらで聞くことができます。

그리운 금강산 한상억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 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懐かしい金剛山   韓相億
誰が言いしか 清らなる
麗しき山 懐かしき
一万二千の 峰みねよ
ことばにこそは 出さねども
自由万民 今こそは
襟を正して もう一度
その名を呼ばむ 金剛山
数万年を 経てもなお
この山こそは清らなれ
汚されしより 幾とせか
ついに尋め行く 時や来し
金剛山は 呼んでいる


注1:冒頭の部分は直訳すると「誰の主題であろうか」。あるサイトでは「誰の主宰であろうか」としてあるが、主宰は주재なのでどうだろうか。「主宰」や「主題」ではわけがわからないので「言いしか」としておいたが、これもあまりピンと来ない。
注2:下から2行目の頭は떠나간지や못가본지というヴァージョンもあるが、『甲乙考試院』に引用されている形のままにしておく。

なお、この日本語訳はメロディーに合わせて歌えるようにはなっていません。
[PR]
by nishinayuu | 2013-08-24 21:34 | 翻訳 | Trackback | Comments(4)

「敦忠の中納言、南殿の桜を和歌に詠みし語」  『今昔物語』巻第二十四の第三十二

c0077412_1425419.jpg

☆『今昔物語』の再話と韓国語訳です。


敦忠の中納言、南殿の桜を和歌に詠みし語
今は昔、藤原実頼が左大臣だったとき、三月の中旬の頃、実頼が朝廷で仕事をしていて、南殿の前にある、神さびた大きな空洞のある桜の木が目に入った。庭の上まで伸びた枝には桜の花がきれいに咲いていて、庭に隙間なく散り敷いた花びらが風に吹きまくられて、波立っているかのようだった。
実頼が「なんともすばらしいことよ。この木は毎年、美しい花を見せてくれるが、これほど見事に咲いたのは見たことがない。土御門中納言(藤原敦忠)がやって来ればいいのに。ぜひこの眺めを見せたいものだ」と言った。すると折良く敦忠がやって来たので、実頼は大いに喜び、敦忠が入ってくるのも待ちきれずに尋ねた。「桜が庭に散り敷いているこの様をどう見るかね?」敦忠が「実に素晴らしいです」と応えると、実頼が「それなら、なぜぐずぐずしている?」と言う。つまり、その素晴らしい眺めを早く和歌にしてみせよ、という意味だ。
敦忠は心の中でこう考えた。この大臣は和歌がよくわかっている方だから、つまらない和歌をお見せしたらまずいことになってしまうだろうし、かといって身分のある方が催促なさっているのに何もお見せしないのもやっぱりまずいだろうし…。 そこで敦忠は身を正してこう申し上げたということだ。
殿守の伴のみやつこ心あらばこの春ばかり朝ぎよめすな
(主殿寮の掃除係の下人よ、風趣を知るならばこの春だけは朝の掃除をしないでおけ――『拾遺集』雑春。源公忠の作歌。詞書に「延喜の御時南殿にちりつみて侍りける花を見て」とある。敦忠は自分で歌を詠むことはせずに、よく知られた公忠の名歌を捧げたと思われる。)


아츠타다中納言(注1)가 남전의 벚꽃에 대한 와카를 지은 아야기
옛날 옛날에, 후지와라노 사네요리-대신이 좌대신이던 시절, 삼월 중순 무렵 그가 조정에서 일하고 있을 때, 줄기에 큰 구멍이 난 신령스러운 벚나무 한 그루가 남전앞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정원위로 뻗어나온 가지에는 벚꽃이 아주 멋있게 피어 있었고, 정원을 가득 메운 떨어진 꽃잎들이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마치 파도가 일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그 때 사네요리가 “말할 수 없이 근사하구나! 그 벚나무는 매년 대단한 꽃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훌륭하게 피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네. 츠치미카도中納言(아츠타다)가 찾아오면 좋을텐데. 꼭 이 경치를 보여주어야지” 라고 말하셨단다. 이에, 때 마침 아츠타다가 찾아왔는데, 사네요리는 아주 기뻐하며, 그가 안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물었다. “벚꽃이 정원을 덮은 이 모습을 당신은 어떻게 보는가?” 아츠타다가 “참 멋있는 경치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자, 사네요리가 말하기를 “그럼 왜 이렇게 느리니?” 그 뜻은 그 훌륭한 경치를 가지고 어서 와카를 지어보라는 것이다.
아츠타다는 가슴속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 대신님은 와카를 잘 아시는 분이어서 하찮은 와카를 지어 보여드리면 내 처지가 난처해질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높으신 분이 이렇게 재촉하시는데 아무 대답 하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난처하게 될지도 모르고… 이에 아츠타다는 자세를 바로잡고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허드렛일을 하는 이여 청컨대 이 근사한 정원은 이 봄날만은 아침청소를 하지 마오(注2)

(注1) 중앙최고관청의 차관, 大納言의 아래)
(注2) 여기서 아츠타다는 스스로 지은 와카가 아니라 源公忠(미나모토노 킹타다)가 지은 유명한 와카를 바친 모양이다.
[PR]
by nishinayuu | 2013-07-26 14:27 | 再話 | Trackback | Comments(0)

韓国の詩 「回想」 鄭炳五


c0077412_170375.jpg

韓国の詩人・鄭炳五の詩を日本語にしました。原詩は定型詩ではありませんが、訳詞は7音で統一してみました。なお、鄭炳五についての簡単な情報は右欄の「韓国の著名人」をクリックし、のページを開いてご覧下さい。


회상

하늘가엔 구름이
깃털 처럼 날리고
은빛 바다엔
작은 배가 떠 있다

파도에 밀려와
말라버린 해초는
미역인지
다시마인지

바다를 바라보며
옷을 벗는다
보낸 여름보다
더 아픈 가슴으로

몰살 간지럼 온몸으로
짭잘한 냄새 맡으며
어지러이
눈을 감는다

바다가 하도 그리워
찾은 포구
그 곳엔 등대도 있었다


回想

空には白い
羽根雲流れ
しろがね色に 輝く海に
ぽつんとひとつ 小舟が浮かぶ

波に流され 打ち上げられて
干からびている この海藻は
若布だろうか
昆布だろうか

海を見ながら
裸になれば
胸の痛みは
いよいよ深く

うずく身体で 潮の香かげば
思い乱れて
つい目を閉じる

むしょうに海が恋しくなって
やって来た海
その浦辺には 燈台なども あったのだった
[PR]
by nishinayuu | 2013-06-10 17:02 | 翻訳 | Trackback | Comments(1)

蕪村春秋-その2「五月雨」

c0077412_1404198.jpg数年前に新聞に掲載されていたコラムを韓国語に訳してみました。原文は韓国語の下にある「五月雨」をクリックしてお読み下さい。

장맛비

장마의 계절
물살이 센 강앞에
작은 집 두채


이 하이쿠(俳句)를 보면 곧 생각나는 명작이 하나 있다. [오쿠의 오솔길(奧之細道)]에 실린 하이구로, 바쇼(芭蕉)가 모가미-천(最上川) 강가에서 지은 것이다.

장마의 비를
모아서 세차구나
모가미 강류


부손(蕪村)이 이 바쇼의 작품을 몰랐을 리가 없기 때문에, [집 두 채] 라는 하이쿠는 바쇼를 충분히 의식하면서 지은 작품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이쿠는 불과 17음으로, 보통 그 17음 중에 계절을 나타내는 말인 계어(季語)가 포함된다. 즉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것은 고작 10음 정도다. 작품의 모습이 다소간 닮은 점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하이구의 경우, 닮은 것은 모습뿐, 그 내면에 있는 것이 완전히 다르다. 그 차이야 말로 내가 여러번 이야기해온 영상성이다.
바쇼의 하이쿠를 영상화 하려면, 한 컷 있으면 충분하다. 더 많은 컷을 거듭하도라도, 설명적이 될 뿐, 별로 의미가 없다. 다만, 영상을 단지 스토리를 설명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멍텅구리 TV디렉터들이라면, 지금이 기회라는 듯이, 물살의 기세를 설명하기 의해 카메라를 좌우로 움직일 텐데……
바쇼의 하이쿠가 훌륭한 응축이라면, 부손의 하이쿠에는 무한한 퍼짐이 있다. 도저히 한 컷으로는 전체를 찍을 수 없다. 두 채의 집에 사는 불안한 사람들을 촬영하기 시작하면, 연달아 컷이 늘어난다. 온 식구들의 표정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재미있는 영상이 된다.
그것은 부손의 하이쿠에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장맛비 와서
논마다의 어둠이
가득 차 있네


보통 [논마다의 달]이라고 한다. 논을 물들이는 달빛은 논 한 구획씩 그 멋이 다르다. 장맛비때문에 달은 보이지 않지만, 짙은 쥐색의 물빛은 논마다 다르다.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지은 하이구인 것 같지만, 부손의 하이구에는 이 만큼의 영상성이 있다.
(지은이:타카하시 오사무)

「五月雨」
[PR]
by nishinayuu | 2013-05-27 14:01 | 翻訳 | Trackback | Comments(2)

韓国の詩 「お前に俺がわかるのか」 鄭炳五


c0077412_17201028.jpg韓国の詩人・鄭炳五の詩を日本語にしてみました。原詩は定型詩ではありませんが、訳詞は7・5調にしてあります。なお、鄭炳五についての簡単な情報は右欄の「韓国の著名人」をクリックし、のページを開いてご覧下さい。


네가 나를 아느냐     정병오

요일을 말하자면 태양의 날
얻어 입은 옷의 단을 줄이기 위해
세탁소로 간다

노랗게 물든 노을 바라보다가
동네 아이들의 뛰어가는 모습이거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 모녀의 모습에서
삶의 이치가 저절로 알아지는
그 고마움을 생각하며 걷는데
행색이 수상하다며 강아지가 짖는다

그냥저냥 무시하고 가는데
멈칫멈칫 따라오며 자꾸만 시비를 건다

문득 가던 길을 멈추고
냅따 발을 구르니
깨갱거리며 줄행랑이다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お前に俺がわかるのか

曜日をいえば日曜日
もらった服の裾詰めに
洗濯店に向かう道

空は黄金に夕焼けて
近所の子らは駆けまわり
母と娘は二人連れ
彼らを見ればひとりでに
なぜ生きるのか理解でき
心も脚も弾むのに
怪しいやつと見とがめて子犬のやつが吠え立てる

知らぬふりしてやったのに
へっぴり腰で追ってきて しつこく吠えて責め立てる
足をぴたりと止めてから
ぱっと後ろを振り向くと
きゃんきゃん鳴いて逃げていく
「子犬よ、お前、いったいなにを見たんだね?」
[PR]
by nishinayuu | 2013-05-12 17:24 | 翻訳 | Trackback | Comments(1)

「蕪村春秋」


c0077412_1117015.jpg数年前に新聞に掲載されていたコラムを韓国語に訳してみました。原文は韓国語の下にある「蕪村春秋」をクリックしてお読み下さい。

부손 춘추

친정 나들이 나니와 떠나서 가는 나가라강변
춘풍속에서 강변길은 길디 길고 친정은 멀고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세상 사람은 두 가지밖에 없다. 부손(蕪村)에 미치는 사람과 평생 부손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다.
명치30년(1897),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는 부손(蕪村)론을 전개하면서 상당히 과격한 말을 했다. “부손은 실로 100년 동안 망각속에 있었지만, 그의 하이쿠(俳句)는 바쇼(芭蕉)의 작품 못지않게 때로는 바쇼를 능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손이 각광을 받지 않았다는 데에는 그의 하이쿠가 저속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는 이유와 부손이후의 하이쿠 작가들이 무지했다는 이유가 있다.” 시키도 부손에 미친 한 명이었던 셈이다.
부손의 명작 [춘풍마제곡(春風馬堤曲)] 은 위에 제시한 시구 두개로 시작한다. 부손이 쓴 머리말에 의하면, 어느 날 고용주에게서 휴가를 얻어 친정으로 돌아가는 처녀와 길동무가 되어서 얼마 동안 동행했는데, 그 처녀의 심정을 18의 시구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손이 누구에게로 보내려고 했는지 알지 못하는 편지에는 이 작품에 대하여 ‘오오사카에서 친정까지 가는 길을 [사랑하는 남녀의 여행] 형식으로 만들어낸 한 편의 연극이고, 흥행주는 야반정-부손(夜半亭-蕪村). 우스깡스러운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옛날을 그리워하는 나의 신음 소리의 시다’ 고 쓰여 있다. 때로는 한시도 섞어가며 만든 이 작품은 시로서의 실험이자, 어미를 그리는 작품이었다.
춘추의 친정 나들이는, 옛날에 정초와 우란분 때 16일정도 고용인들이 어머니를 만나러 집에 돌아가는 귀한 휴가였다. 부손은 어린 시절에 어미와 사별했다. 그런데 그 어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러 설 중에는 오오사카의 유력자 아이를 밴 고용인이었다는 아야기도 있다. 친정 나들이건 집에서 기다리는 어미건 모두가 화려하기 짝이 없는 부손의 시세계의 원점이었다는 것이다. 부손과 마찬가지로 사별한 어미를 그리워하는 작가로서 이즈미 교오카가 있다. 살았던 시대도 작품의 질도 다르지만, 화려하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은 서로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어미 그립다 벗꽃이 피는 저녁 봉우리엔 소나무 泉鏡花

(注)야반정(夜半亭)은 부손(蕪村)의 호.

「蕪村春秋」
[PR]
by nishinayuu | 2013-04-28 11:19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7つの時間を感じて」  ウラジオストク


c0077412_14101720.jpg☆新聞のコラム(2012.5.3朝日新聞「特派員メモ」)を韓国語にしてみました。原文は韓国語の下にある「7つの時間を感じて」のところをクリックしてお読み下さい。



일곱 가지의 시간을 느끼면서

4월에 블라디보스톡-지국이 개국됐다. 그것은 일본해를 사이에 두고 일본과 서로 이웃이 되는 지역이다. 북한이나 중국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유럽식 건물이 줄지어 서 있는 신기한 도시다.
부임해와서 당황스러운 것은 7가지의 시간을 의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보다 서쪽에 있으면서도, 왜 그런지 시간은 일본보다 2시간이나 빠르며, 아사히신문 해외거점 중에서 맨 먼저 업무가 시작된다. 마감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조간의 최종마감 직전인 일본의 오전 1시가, 여기에서는 오전3시. 때로는 날이 샐때까지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새로운 지국이 담당하는 러시아 극동지역만해도 실로 세가지의 시간대가 존재한다. 시차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취재처의 점심시간이거나 퇴근 후에 찾아가게 되기도 하다.
같은 러시아에 있는 모스크바지국과의 시차는 7시간. 이곳이 저녁이 되는 무렵 그것은 출근시간이다. 옆나라 중국에 있는 총지국과의 시차는 3시간이다. 또 이 새로운 지국이 소속되어 있는 런던 유럽총국과의 시차는 10시간으로, 낮과 밤이 역전되어 있다.
신지국에서 발신하는 뉴스는 유럽의 바람을 느끼게하는 화제도 있고, 중국이나 조선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문제도 많을 것이다. 시간대가 여러가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루는 뉴스도 여러가지 있다. 그것이 재미있다.

「7つの時間を感じて」
[PR]
by nishinayuu | 2013-04-12 14:10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燕たちのひそひそ話」テオフィル・ゴーティエ

 

c0077412_14344024.jpg2012年9月17日の記事『クラリモンド』にエミール・ガレ作のランプの画像を添えましたが、そのランプに描かれているゴーティエがガレに捧げた詩「燕たちのひそひそ話」を韓国語に訳してみました。原詩、日本語訳(訳者不明)、韓国語訳(nishina)の順になっています。


La Pluie au bassin fait des bulles
Les Hirondelles sur le toit
Tiennent des conciliabules
Voici l'hiver, voici le froid!

水たまりに雨、水面は泡立ち、
屋根のつばめたちは
ひそひそ話にかかりきり、
冬が始まる、寒さがくるよ!

비가 웅덩이에 거품을 일으키고
제비들은 지붕위에서
비밀 이야기에 몰두하네
이봐, 겨울이 올 거야, 이봐, 추위가 올 거야!
[PR]
by nishinayuu | 2013-03-28 14:37 | 翻訳 | Trackback | Comments(1)

韓国の詩「仙巌寺」 鄭昊昇


c0077412_13473961.jpg
韓国の詩人・鄭昊昇の詩を日本語に訳してみました。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줄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涙が出たら汽車に乗って仙巌寺に行け
仙巌寺の解憂所に行って思いきり泣け
解憂所にうずくまって泣いていれば
枯れた松の木の根が這い回り
木魚が青い空を飛び回る
草の葉がハンカチをとりだして涙を拭いてくれ
小鳥たちが胸の中に飛び込んできて鐘を鳴らす
涙が出たら歩いてでも仙巌寺に行け
仙巌寺の解憂所の前
背中の曲がった松の木に凭れて慟哭しろ
[PR]
by nishinayuu | 2012-07-16 13:49 | 翻訳 | Trackback | Comments(3)

「誇り高き専業主夫」 ルッカ(イタリア)


c0077412_1051153.jpg
☆新聞のコラム(2011.1.7朝日新聞「特派員メモ」)を韓国語にしてみました。原文は韓国語の下にある「誇り高き専業主夫」のところをクリックしてお読み下さい。


긍지 높은 남자 전업주부
“주부라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았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이탈리아 북부 루까(Lucca)에 사는 브레치아니씨(58). 직업은 전업주부다.
그는 정육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10년전에 가게를 그만두고, 의사인 아내를 도와주기 위하여 온갖 집안일을 담당하고 있다. 취사, 세탁, 청소…… 자식들은 이미 다 성인이 되었으니, 자식을 키우는 고생은 없었다. “나에게는 알맞은 일이 었던 것 같아요. 긍지와 열정을 가지고 집안일을 해 왔어요.”
그는 이 나라 유일한 남자주부협회의 회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신분증명소를 갱신할 때, 관청에서는 그에게, 직업란에 [실업자]로 쓰라고 요구했다. 관청의 컴퓨터에는 [주부]를 나타내는 여성명사 [까사린가(casalinga)] 이외에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남자주부]에 해당하는 남성명사 [까사린고(casalingo)]로 적는 것을 요구하여 양보하지 않고, 옥신각신한 끝에 겨우 인정을 받아냈다.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그는 [남자주부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하면서, 2003년에 협회를 설립했다. 불과 세 사람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제 회원은 전국에서 5000명에 이르고 있다.
회원들의 고민거리는 편견이다.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강 저편으로 건너갔다]는 험담을 듣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맘마(엄마)의 존재감이 절대적인 나라에서의 남자주부업이므로, 고생도 한층 많은 것 같다.

「誇り高き専業主夫」
[PR]
by nishinayuu | 2012-05-01 10:07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