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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やじのせなか (渡辺えり子)

☆朝日新聞のコラム(2005.1.30)を翻訳したもの。原文は韓国語の下にある「原文」というピンクの文字をクリック。

아버지의 등 (와타나베 에리꼬)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자주 제 베갯머리에서 미야자와 켄지나 타카무라 코오타로오의 시를 읽어주셨습니다. 시의 뜻은 잘 몰랐지만 저는 지금도 몇 편을 암송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소학교 교사였습니다. 전쟁에 의하여 가치관이 180도 변한 것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교육이라는 도대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살고 있는 야마가타현내의 제 생가에는 타카무라 코오타로오의 자필 서명이 들어간 [道程]이 있습니다. 저는 왜 그러한 것이 있는지를 오래동안 몰랐습니다.
  전쟁중 아버지는 학도동원으로 동경에 있던 전투기를 제조하는 비행기공장에서 선반공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공장의 근처에서 큰 공습이 시작될 것이라는 정보가 전해져서 전원피난명령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기계를 관리하기 위하여 공장안에 남았습니다. 발견될 때에 사체가 보기 흉하지 않도록 아버지는 단벌의 나들이옷을 입고 옥상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당장에라도 죽을까 봐 내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두려웠다” 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심취해 있던 타카무라 코오타로오의 시를 낭송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켰다고 합니다.
  공습이 빗나간 뒤 아버지는 자전거로 타카무라 코오타로오의 아틀리에에 갔습니다. “선생님이 무사히 계시는지 아닌지 걱정돼서 상황을 보러 왔습니다” 고 말했더니 본인이 악수를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제 생가에 있는 시집은 그때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제가 30대인 무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40년 가까이 전쟁의 추억을 봉인해왔다는 것입니다. 공습이 직격했었더라면 아버지는 죽었고 나는 태어나지 않았다……먼 존쟁일 줄 알았던 전재이 갑자기 저의 인생에 직결됐습니다.
  10년정도 뒤 아버지의 체험에 입각한 [빛나는 시간] 이라는 희곡을 썼습니다. 무대를 보러 온 아버지는 “눈물때문에 중간부터 보지 못하게 됐네”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희들의 세대는 직접적으로는 전쟁을 모르지만 부모들의 세대가 말해주신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가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저는 강렬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原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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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09-06 20:40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セーヌのカモメ

☆「特派員メモ」(朝日新聞のコラム)の翻訳です。原文の日本語は、韓国語の下にある「原文」というピンクの文字をクリックすると出てきます。なお、パリ、サン・ジェルマンなどの韓国語表記についてはマイリンクの外来語辞典をご覧ください。

센강의 갈매기 [특파원 메모 파리]

  센강의 강변 왼쪽, 생게르만 (Saint-Germain)의 뒷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머리위에서 ‘기이’ 라는 소리가 들렸다. 철새인 붉은부리갈매기다. 군밤상인과 함께 이 거리에게 본격적으로 겨울을 알리는 새라고 들어알고 있었다.
  루브르미술관의 정원에서는 관광객들이 뿌리는 빵을 한둘레는 작은 비둘기들과 쟁탈하고 있다. 허리의 위치가 높아서 그런지 그들은 땅바닥에서의 다툼에서는 불리하다. 비둘기가 먹고 남긴 음식을 상공에서 노리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그들이 활공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들이 날개를 쉬는 자리는 가로등이나 동상의 정수리다. 비둘기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것은 이방인으로서의 고집인가.
  겨울철의 도시에 갈매기가 모이는 이유는 도시의 온난화로 인하여 살기가 쉬운 것을 학습했기 때문인것 같다. 음식점의 부엌 쓰레기, 노천시장의 채소 부스러기는 먹고 싶은 대로 먹을 수 있다. 생활권인 강의 수면에는 귀찮은 비둘기도 없다. 이러한 살아가기 위한 이동도 인간세계와 같다.
  나는 갈매기를 틀림없이 바다새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불해협에서 1500km나 내륙으로 들어온 파리에서 그들을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파리의 ‘야조회’ 에 물어보니 겨울이외에도 어딘가 먼 곳에서가 아니라 교외에 있는 호수와 늪이나 운하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파리의 주변에 정주하는 붉은부리갈매기는 최근 10년 동안에 급증하고 있으며, 지금은 약 3000쌍. 이것이 바로 이민이다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다음같은 설명을 들었을 때 였다.
  “파리에서 사는 갈매기의 대부분은 바다를 본 적이 없는 겁니다.”

原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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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08-29 14:03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韓国俳句紀行 サムルノリ

読売新聞のコラム(黛まどか著 2002.12.4)を訳してみました。韓国語の下に原文があります。

한국 하이쿠 기행 [사물놀이]

  [월간 헵번]의 하이쿠 동아리인 두 사람과 함께 단풍으로 물든 늦 가을의 한국에 왔다. 작년 8월에 시작된 도보여행은 지금은 이천-서울 간 80km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번에는 이 기행을 알게된 한국 사람들과 한국에 사는 일본 여성들 몇명이 우리와 함께 걸어가기로 됬다.
  아침 9시, 이천의 호텔 로비에서 그들과 합류. 자기소개를 간단히 마친 후 금방 출발했다. 여행 출발의 떠들썩함에 반해 나는 아침부터 어쩐지 기세가 오르지 않았다. 출발 직전의 화밀 스케줄 때문에 몸의 상태가 나빠저서, 전날 밤부터 열이 높아진 것도 이유의 하나 였지만, 역시 이제야 말로 여행이 끝나겠다는 외로움이, 보통때에는 느낄 수 있는 여행초일의 들뜨는 듯한 기분을 해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천은 도자기의 도시으로서 일본에서도 잘 알리어지는데 쌀의 주산지로서도 유명하다고 한다. 지나는 길에 풍년을 축하하는 가을축제를 마주쳤다. 축젤 위해 전시되고 있는 허수아비들에는 치마저고리 등 전통복뿐만 아니라 월드컵으로 친해진 [Reds]의 빨간 T셔츠도 입혀 있어서, 지금도 한국 사람들이 월드컵의 여운에 잠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곡의 소리와 함께 사물놀이(수확을 축하하는 춤)의 일단이 가을 바람처럼 우리앞을 지나갔다. 모자 끝에 붙인 긴 리본을 뱅글 뱅글 바람에 날리며, 온 몸으로 풍년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동안 사물놀이에 뒤 딸라 축제의 한복판을 걸어간다.
  한국에는 한 걸음 먼저 겨울이 온 것 같다. 정오가 되어도 아직 내뱉는숨이 하얗다. 내 가벼운 옷차림을 차마 볼 수 없어, 이번 여행에서 처음 만난 서울에 사는 히구치 요오꼬씨가, 자기자신의 장갑을 벗어 나에게 빌려주었다. 춥다고 하고는 웃고, 배가 고프다고 하고는 또 웃으면서, 여자들끼리의 여행은 왁자그르르 계속됐다.

여행자들을 한참 즐거워하는 가을 축제야

原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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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08-16 22:42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タバコとエコロジーの差

☆「新日本語の現場93」(数年前の読売新聞コラム)を翻訳してみたものです。韓国語訳の下に、日本語の原文があります。

新 일본어 현장 *93*

  '카타카나어' 와 '외래어' 는 어떻게 다릅니까---어떤 독자로부터 기본적인 질문을 받았다.
  이 기회에 용어를 정리해 두자. '외래어'는 말의 성장 과정에 주목한 용어다. 순수한 일본어가 아니라, 외국어에서 유입되어 정착한 말을 가리킨다. '차용어'라고도 한다.
 외국에서 수입되었다는 의미로는 고대에 한자와 함께 도입된 중국어 기원의 '漢語'도 넓은 의미로는 '외래어'라고 할 수 있다. 立冬, 降雨, 運動, 得意---.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의 대부분은 한어다. 油斷(방심), 怪我(부상)등 한자를 이용해 만들어진 '和製漢語' 도 많다.
 그러나 한어는 일본어에 유입된 지 천 몇 백년이 되므로, 외래어라는 의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보통 '외래어'라고 할 때는 タバコ(담배), カルタ(카드), シャツ(셔츠), テレビ(넬레비전), エコロジー(에콜로지), リテラシー(리테라시), 같은 구미 기원의 말을 가리킨다.
 이들 '외래어'는 일반적으로 카타카나로 표기되기 때문에 '카타카나어'라고도 한다. 즉, '외래어'를 표기 측면에서 파악한 말이 '카타카나어'다.
 다만, タバコ, カルタ등은 거의 완전히 일본어가 되어 한자나 히라가나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 '카타카나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한편, エコロジー, リテラシー등은 낯설고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본어로서 정착되었는지 아닌지 문제가 된다.  シャツ나 テレビ와 같은 레벨이라 하기 어려워, 이들이야 말로 '카타카나어'라고 부를 만하다.
 현대의 일본어를 생각할 때, '외래어'보다도 '카타카나어'라고 하면 문제점이 더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을까. 

日本語の原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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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08-08 14:47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本当はあり得ないHAL

☆7/23の記事の続編です。韓国語訳の下に日本語の原文があります。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HAL

  “원인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실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과거의 예가 보여주는 대로 실수란 인간이 하는 것이다. 9000형은 완전무결입니다”
 스탠리 규브릭 감독의 영화 ‘2001년 우주여행’ 에서 우주선 디스커버리호 승무원에 대하여 이렇게까지 단언한 HAL9000형 컴퓨터. 규브릭은 그를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다 알고 속이려는 생각마저 드는 지성의 소유자로 묘사했다. HAL은 인공지능개발의 목표가 되고, 왜 HAL을 실현 할 수 없는지 상세하게 분석한 책조차 있다.
 그러나, 오오사카대에서 지능로봇을 연구하고 있는 아사다미노루 교수는 “HAL이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을 헤아릴 수 있을 리가없다” 고 한다. 왜? 아무리 큰 기억용량과 빠른 처리속도를 가지더라도, HAL은 이 세상의 현실과 마주대할 수 있는 신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제작자는 HAL을 ‘어려서’ 부터 ‘교육’ 했지만, 몸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다면 다 ‘좌학’ 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이 쓰는 모든 말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기 시절부터 체험하면서 공부했기 때문에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체험을 가지지 않는 HAL은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제는 지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지성이 깃들이는 신체가 필요하다는 ‘상식’ 이 연구자들안에서 생기고 있다.
 그런데, 원작자 A.C.클랄크는, HAL을 신체를 가지는 로봇으로 상정한 적도 있었다고 다른 저작에서 밝혔다. 그렇다면 완전히 다른 ‘2001년’ 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原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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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07-31 18:19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盤上で人間との知恵比べ

☆【「知能をつくる」五話 その1】 (朝日新聞のコラム)を韓国語に訳してみました。チェスの世界チャンピオンと対戦したコンピューターについての話です。韓国語のあとに日本語の原文があります。


체스판에서 인간과의 지혜경쟁

  “그것은 인간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수. 나는 새로운 종류의 지성을 느꼈다.” 1996년 2월 체스의 세계챔피언이던 게리=카스파로프는 매초 2억 수를 전력을 다해 읽는 IBM사의 체스전용컴퓨터 ‘디프 블루’ 와의 최초의 시합에 졌을 때 그렇게 말했다. 인공지성이 최고급의 인간지성에 필적된 최초의 예였다.

카스파로프는 이 대전에 3승1패2무승부로 이겼지만, 이듬해에는 1승2패3무승부로 져서, 그것이 ‘ 인공지능, 승리한 날’ 로 보도되었다. 실은 IBM사의 기술진이 시합마다 소프트룰 조정했기 때문에 매회 같지 않은 ‘지성’ 을 만나 당황한 것이 카스파로프의 패인이었을 것이다. 그후 IBM사는 컴퓨터체스의 연구에서 손을 떼었(철퇴했)기 때문에, 진정한 힘은 잘 모르는 채로 남아있다.

그후에도 각종 체스용 소프트는 세계의 여기저기에서 개발되고 있어서 카스파로프와 기계 사이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작년 2월에는 노트컴퓨터에서 작동하는 체스프로그램 ‘디프 주니어’ 와 시합을 해서 비겼다. 카스파로프의 흥미는 여러 인공지능이 각각 개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컴퓨터체스의 기술은 다른 데에서도 유용할까? 공립하코다테미래대의 마츠바라 히토시교수에 따르면 화합물의 조합을 계산하는 것으로 시험하여 새로운 약을 찾아내는 기술로 응용할 수 있다고 한다. 지성을 만들기 위한 길은 또 계속될 것인데, 천재에 필적하는 인공지성은 지금으로서는 이 체스컴퓨터밖에 없다. (우치무라 나오유키)

(原文)盤上で人間との知恵比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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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07-23 21:02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가방의 운명

이스라엘의 택시운전기사가 해주었던 이야기. 관광객이 창백한 표정을 지으며 차안으로 들어와서 “저 버스를 뒤쫓아줘” 라고 외쳤다. “왜 그래요?” 라고 물었더니, 가방을 잊고 내렸다고 한다. “아니,걱정하지 마세요. 즉시 멈출 거니까….자, 봐요.” 멈춘 버스에서 승객들이 앞다투어 내려오고 당장 경찰 또는 군대가 뛰어온다. 소유자가 분명하지 않은 짐은 이 나라에서는 반드시 폭발물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로스앤젤레스에서의 경험. 양손에 큰 짐을 들고 있는 늙은이가 비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제가 들어드릴까요?” 내가 말을 걸었더니, 그는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뒤걸음질치자마자 식식거리며 뛰어가 버렸다. 내 잘못이었다.

서울에서 본 일. 가방을 손에 든 젊은이가 버스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아 있던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젊은이가 휙 그 가방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무릎위에 놓았다. 버스에 올라탄 젊은이는 “고마워” 라고 인사했다.

회사에서 퇴근하는 사람들로 복잡거리는 동경역에서 있었던 일. 사람들은 교외로 가는 전철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 역의 시발 전철이 플랫폼에 도착한 후 좌석을 확보한 샐러리맨이 거기에 가방을 놓은 채 사라진다. 좌석에는 소유자가 불분명한 가방이 남아있다. 가방속에 많은 돈이 있는지, 시한폭탄이 시시각각으로 재깍거리고 있는지, 주변의 사람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깡통커피와 석간신문을 손에 들고 돌아온 샐러리맨은 좌석을 지켜봐주던 가방을 그물선반위로 던져올린 뒤 하품을 한다.

같은 가방의 운명도 나라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原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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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6-07-15 23:49 | 翻訳 | Comment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