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飛鳥寺の原型 百済の寺か」 韓国・王興寺

☆新聞記事(2008.4.16朝日新聞)を韓国語にしました。原文は韓国語の下にあります。

아스카사의 원형은 백제의 사찰인가 한국-왕흥사

일본최고의 사찰로 알려진 아스카사(나라현 아스카촌)의 모델이 한국의 왕흥사가 아닌가 하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
왕흥사는 6~7세기에 백제의 수도-부여에 있던 사찰인데, 조선의 역사책에는 600년 이후의 창건으로 짐작되어 왔다. 그런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조사로 작년 10월에 금,은,청동의 사리함이 출토, 거기에 새겨진 글씨로 백제왕이 발원 하여 577년 2월에 창건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서기(日本書記)]에 따르면, 아스카사는 577년11월에 백제왕이 기술자들을 일본으로 보내어, 588년에는 불사리도 도착해서 축조를 시작한 것이며, 596년에 불탑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이번 출토로 두 사찰을 잇는 깊은 관련이 떠올았다.
이달 초에 유적을 확인한 오오하시 카즈아키-와세다대학교교수(불교미술사)는 두 사찰의 건축에는 같은 계통의 기술자들이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왕흥사를 뒤따르듯이 아스카사의 계흭이 진행된 모양이다. 백제는 불상이나 경서를 일본으로 보냈는데도 불교가 보급되지 않자, 절을 세워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현지를 찾아간 연구자들 중에는 탑의 구조나 출토품, 기와의 무늬등이 아주 닮았다고 보는 소리가 강하다. 아스카사의 별명이 법흥사, 원흥사 라고 하는 데에도 유사성이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와타나베 노부시)




日本最古の寺院とされる飛鳥寺(奈良県明日香村)のモデルが韓国の王興寺ではないかとの見方が強まってきた。
王興寺は6~7世紀にあった寺で、朝鮮の歴史書では600年以降の創建とされていた。ところが、国立扶餘文化財研究所の調査で昨年10月、金・銀・青銅の舎利容器が出土、そこに刻まれた文字から百済王の発願で577年2月に創建されたことが判明した。
日本書紀によると、飛鳥寺は、577年11月に百済王から技術者が日本に送られ、588年に仏舎利が届いて造営を開始、596年に仏塔が完成したとされる。今回の出土で二つの寺を結ぶ深い関連が浮かび上がってきた。
今月初めに遺跡を確認した大橋一章・早稲田大教授(仏教美術史)は両方の寺に同じ系統の技術者がかかわったとみる。「王興寺を追いかけるように飛鳥寺の計画が進められたのだろう。百済は仏像やお経を日本に送ったが仏教は広まらず、寺を造らなくてはとの思いだったのではないか」
現地を訪ねた研究者の間では塔の構造や出土品、瓦の文様などもよく似ていると見る声が強い。飛鳥寺の別名が法興寺、元興寺というのも類似性が指摘される。(渡辺延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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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8-09-23 13:44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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