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村彦次郎の文士のいる風景 久生十蘭 その1

☆新聞のコラム(朝日新聞2006年2月)を韓国語に訳したものです。原文はこちら

오오무라 히꼬지로오 문사가 있는 풍경 4 久生十蘭

히사오 주우란 (久生十蘭)은 본명 아베 마사오. 홋카이도오의 하코다테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쇼오와시대(1926---1989) 초기에 파리에 유학해서 프랑스 근대극의 중진이던 샬르-듀랑에게서 연출을 배웠다. 그래서 그의 필명의 유래는 스승의 이름을 비틀어 만든 것일까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라 그 필명은 그가 스스로 성명판단의 책을 자세히 연구한 후에 명명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 사람들은 ‘쿠-우-토-란 (먹기도 바쁘다)’ 나 ‘히사시쿠-이키-토-란 (오래 살지 않는다)’ 의 서투른 익살인 줄 알았기 때문에 그는 기가 죽었다.

히사오는 젊었을 때에는 재기에 의지하여 형식을 가려서 여러가지 원고를 썼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문장에 공들여 표현상에서 고심을 거듭했다. 그래서 히사오의 글을 쓰는 것이 느린 것은 소문이 났고, 약속한 시간에 찾아온 편집원에게 그는 ‘원고는 아침에 속달우편으로 보냈다’ 는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어떤때는 신문사 학예부기자가 오늘은 연재소설의 마감이니까 원고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여기서 버티고 앉아 움직이지 않겠다며 위협적인 태도로 돌변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히사오는 안색을 바꾸고 아내에게 “여보, 저 장안에 기관총이 있으니까 꺼내라. 이 놈을 쏘아 죽여버릴테야” 라는 말을 내뱉었다. 그에 대하여 흥미 있게 날조된 뜬소문이 여러가지 있어서 그것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가 기인문사라는 인상을 받았다.

히사오는 시대소설 [수즈키 몬도]로 쇼오와26(1951)년 하반기 나오키상을 얻었다. 그때 이미 49 살이었던 그는 “목장의 말이란말야. 낙인이 찍혀서 불편해졌다” 며 푸념했다. 쇼오와32(1957)년 10월, 그는 식도암 때문에 죽었는데, 죽기 전에 아내에게 “난 월급쟁이가 아니어서 좋았어. 문사는 펜 한 자루만 있으면 일할 수 있잖아. 손이 없어도 구술으로 일할 수 있고, 발이 없어도 실명하더라도------” 라며 집필하려는 의욕에 불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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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07-10-13 10:14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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