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蕪村春秋」


c0077412_1117015.jpg数年前に新聞に掲載されていたコラムを韓国語に訳してみました。原文は韓国語の下にある「蕪村春秋」をクリックしてお読み下さい。

부손 춘추

친정 나들이 나니와 떠나서 가는 나가라강변
춘풍속에서 강변길은 길디 길고 친정은 멀고

처음부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세상 사람은 두 가지밖에 없다. 부손(蕪村)에 미치는 사람과 평생 부손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다.
명치30년(1897),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는 부손(蕪村)론을 전개하면서 상당히 과격한 말을 했다. “부손은 실로 100년 동안 망각속에 있었지만, 그의 하이쿠(俳句)는 바쇼(芭蕉)의 작품 못지않게 때로는 바쇼를 능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부손이 각광을 받지 않았다는 데에는 그의 하이쿠가 저속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는 이유와 부손이후의 하이쿠 작가들이 무지했다는 이유가 있다.” 시키도 부손에 미친 한 명이었던 셈이다.
부손의 명작 [춘풍마제곡(春風馬堤曲)] 은 위에 제시한 시구 두개로 시작한다. 부손이 쓴 머리말에 의하면, 어느 날 고용주에게서 휴가를 얻어 친정으로 돌아가는 처녀와 길동무가 되어서 얼마 동안 동행했는데, 그 처녀의 심정을 18의 시구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부손이 누구에게로 보내려고 했는지 알지 못하는 편지에는 이 작품에 대하여 ‘오오사카에서 친정까지 가는 길을 [사랑하는 남녀의 여행] 형식으로 만들어낸 한 편의 연극이고, 흥행주는 야반정-부손(夜半亭-蕪村). 우스깡스러운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옛날을 그리워하는 나의 신음 소리의 시다’ 고 쓰여 있다. 때로는 한시도 섞어가며 만든 이 작품은 시로서의 실험이자, 어미를 그리는 작품이었다.
춘추의 친정 나들이는, 옛날에 정초와 우란분 때 16일정도 고용인들이 어머니를 만나러 집에 돌아가는 귀한 휴가였다. 부손은 어린 시절에 어미와 사별했다. 그런데 그 어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러 설 중에는 오오사카의 유력자 아이를 밴 고용인이었다는 아야기도 있다. 친정 나들이건 집에서 기다리는 어미건 모두가 화려하기 짝이 없는 부손의 시세계의 원점이었다는 것이다. 부손과 마찬가지로 사별한 어미를 그리워하는 작가로서 이즈미 교오카가 있다. 살았던 시대도 작품의 질도 다르지만, 화려하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은 서로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어미 그립다 벗꽃이 피는 저녁 봉우리엔 소나무 泉鏡花

(注)야반정(夜半亭)은 부손(蕪村)의 호.




やぶ入りや浪花をを出て長良川
春風や堤長うして家遠し
のっけに無茶をいうようだが、世の中には二種類の人間しかいない。蕪村に狂う人と蕪村を知らずに終わってしまう人とである。
明治三十年、正岡子規は蕪村論を展開しかなり過激なことをいった。「蕪村は百年も忘れられていたが、その句は芭蕉に肩を並べ時には芭蕉をしのいでいる。それが脚光を浴びなかったのは、句が低俗に堕していないのと蕪村以後の俳人が無学だったせいである」。子規も蕪村狂の一人だったのだ。
上掲二句により蕪村の傑作『春風馬堤曲』が書き出される。蕪村の前書きによれば、ある日やぶ入りで故郷に帰る女と道連れになり同行数里、十八首からなる詩句でその女の心を詠んだのだという。
だが宛て先不明の手紙には、大阪から親元まで“道行”の形をとった一場の芝居で興行元は夜半亭蕪村、お笑い草めいているが、私の昔を懐かしむうめき声の詩だと書かれている。時に漢詩を交える同作は詩としての実験であると共に、母を恋う作品でもあった。
やぶ入りは正月と盆の十六日前後、昔の奉公人が母のもとに帰る貴重な休暇だった。蕪村は幼時母と死別する。その母の素性がよくわからない。諸説中に大阪の有力者の子を宿した奉公人だったとするものがある。やぶ入りも家に待つ母も、華麗きわまる蕪村詩境の原点だったのだ。同じく死別した母を恋う作家に泉鏡花がある。生きた時代も作品の質も違うが華麗である点では両者まったく譲らない。
母恋し夕山桜峰の松  泉鏡花
(文・高橋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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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shinayuu | 2013-04-28 11:19 | 翻訳 | Trackback | Comment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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